너클볼러(너클볼을 던지는 투수) 스티븐 라이트(32·보스턴·사진)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올해 올스타전은 13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립니다.) 라이트는 10승 5패, 평균자책점 2.68로 전반기를 마감했습니다. 아메리칸리그(AL)에서 현재 평균자책점이 가장 좋은 선수가 라이트입니다.


너클볼러가 올스타전에 나가게 된 건 당시 뉴욕 메츠 소속이던 2012년 R A 디키(41·토론토) 이후 4년 만입니다. 당시 디키는 1이닝을 소화했습니다. 2009년에는 팀 웨이크필드(50·당시 보스턴)가 올스타로 뽑혔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전에는 찰리 휴(68·당시 텍사스)가 1985년에 1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한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 필 니크로(77)는 다섯 차례(1969, 1975, 1987, 1982, 1984년) 올스타로 뽑혔는데 딱 네 타자만 상대했습니다.


너클볼러가 올스타전에서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포수 문제 때문입니다. 올해 AL 올스타 포수 살바도르 페레스(26·캔자스시티)가 '라이트가 올해 올스타전 AL 선발로 나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남긴 첫 마디는 "오 마이 갓"이었습니다. 너클볼은 던지는 건 물론 받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너클볼러는 전담 포수를 두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포수는 대부분 올스타급 기량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너클볼러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라이트 역시 원래 정통파(?) 투수였습니다. 하와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라이트는 2006년 드래프트 때 2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지명을 받았습니다. 운명을 바꾼 건 클리블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AA 팀 애크런에 몸담고 있던 2010년 여느 여름 날. 너클볼러가 너클볼러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장난' 때문입니다. 9살 때 너클볼을 배운 라이트 역시 연습 투구 때 너클볼을 던지며 장난을 쳤고 그러다 '너클볼을 가끔 실전에서 써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너클볼러만 너클볼을 던지는 건 아닙니다. 군사용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투·타구 정보를 알려주는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올해 전반기 때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을 한 개라도 던진 투수는 모두 11명이고 이 중 6명이 자기 전체 투구 중 20% 미만을 너클볼러 던졌습니다. 보통은 이런 투수를 '너클볼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너클볼을 던질 줄 아는 투수인 거죠. 라이트가 처음에는 이런 투수가 되려고 했습니다.


너클볼러가 운명이 된 건 라이트가 너클볼을 제법 잘 던진다는 사실을 마크 샤피로 당시 클리블랜드 사장이 보고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샤피로 사장은 라이트를 불러다 "이제 너는 다시 스물 한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너클볼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시간에 구애 받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자기 팀에서 은퇴한 너클볼러 톰 캔디오티(59)를 불러다 라이트에게 '과외 선생'으로 붙여줬습니다.


너클볼러는 다른 투수들보다 훨씬 느리게 나이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너클볼러에게만 시스템이 다른 계약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2012 시즌이 끝나면 라이트는 마이너리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도록 돼 있었습니다. 때마침 보스턴과 트레이트 얘기가 오갔고 클리블랜드는 라스 앤더슨(29)을 받아오는 대가로 라이트를 보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앤더스은 이 트레이드 이후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한 적이 없습니다.


너클볼러에게 제일 필요한 건 기다림입니다. 결국 2012년을 AL 동부지구 최하위로 끝마친 보스턴은 급할 게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과외 선생이 웨이크필드로 바뀌었습니다. 웨이크필드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라이트는 공 회전을 죽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면서 "내가 도움을 준 건 꾸준히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자세를 미세 조정한 것밖에 없다"며 겸손해 했습니다. 라이트는 올스타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웨이크필드에게 알렸습니다.



너클볼러 얘기를 1900자 넘게 했으니 이제 너클볼 이야기를 할 차례. 이번에도 스탯캐스트로 알아보면 웨이크필드가 가르친 걸 라이트가 잘 배운 모양입니다. 2008년 이후 측정 자료를 살펴 보면 디키는 너클볼이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라이트와 웨이크필드는 오른쪽 타자 몸쪽 위가 주요 코스입니다.


타자(포수)가 보는 관점. 색깔이 짙을수록 해당 지점에 너클볼이 많이 들어왔다는 뜻. 점선은 통상적인 스트라이크 존.


너클볼 스타일 자체를 보면 라이트는 웨이크필드는 물론 디키하고도 다릅니다. 라이트만 '떨어지는' 너클볼을 던집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라이트만 y축이 마이너스(-)인 지점에 탄착군을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클볼은 기본적으로 회전을 죽이는 게 관건이지만 아예 무회전으로 던질 수는 없습니다. 투수가 자연스럽게 공을 던지면 역회전(백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똑같은 속도로 회전 없이 던진 공하고 비교하면 공이 뜨는 것처럼 들어옵니다. 디키하고 웨이크필드가 던지는 너클볼은 이런 형태입니다. 거꾸로 너클볼이 떨어진다는 건 이 공에 커브처럼 정회전(탑스핀)이 걸렸다는 뜻입니다.


너클볼이 좌우로 변하는 형태도 라이트는 스승하고 다릅니다. 위 그래프에서 x축을 보시면 디키하고 라이트는 마이너스(-) 쪽에 웨이크필드는 플러스(+) 쪽에 탄착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디키하고 라이트가 던진 너클볼을 3루 쪽으로 변하지만 웨이크필드가 던진 너클볼은 1루 쪽으로 휘어나가는 특성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너클볼 속도를 따졌을 때도 라이트는 스승 웨이크필드보다 디키하고 더 가깝습니다. 라이트가 던진 너클볼은 평균 시속 75.1마일(약 120.9㎞)입니다. 같은 기록을 보면 디키는 76.1마일(약 122.5㎞)인데 웨이크필드는 65.4마일(약 105.3㎞)밖에 되지 않습니다.


너클볼은 그래도 움직임이죠. 속도에 움직임까지 더해 그려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y축은 속도고 x축은 (상하, 좌우 모두를 포함한)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너클볼 속도로 승부를 보는 게 디키입니다. 디키는 그저 평균 속도만 그저 빠른 게 아닙니다. 움직임이 비슷한 공을 다양한 속도로 던질 줄 알죠. 거꾸로 웨이크필드는 엇비슷한 속도로 움직임이 다른 공을 던집니다. 라이트는 아직 확실히 '내 스타일은 이거다'하고 자리잡기 전처럼 보입니다.


너클볼을 놓는 지점, 릴리스 포인트를 확인해도 재미있습니다. 세 선수 모두 키가 6피트 2~3인치(약 188~190㎝)로 엇비슷합니다. 그런데 릴리스 포인트는 웨이크필드가 제일 높습니다. 세 선수 중 유일하게 오버핸드로 공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라이트가 제일 높아야 할 거 같은데 실제로는 아닌 겁니다.



너클볼을 던지는 릴리스 포인트 차이는 측정 방식에도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스탯캐스트 이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PFX(Pitch F/X)는 투수판에서 50피트(1.524m) 떨어진 지점에서 공 위치를 릴리스 포인트로 측정합니다. 반면 스탯캐스트는 실제로 공을 놓는 지점을 측정하죠. 이 차이 때문에 웨이크필드만 유독 릴리스포인트가 높은 걸로 나왔을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웨이크필드는 공을 빨리 놓는 방식으로 회전을 줄이기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가 높게 나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의견 주세요.)


너클볼을 던질 때만 따로 뽑아도 라이트는 릴리스 포인트를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일부러 스타일을 달리해 던지는 건지 아니면 '완성형 너클볼러'로 나아가는 과정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구 비중을 따져 봐도 라이트는 전체 투구 중 72.8%가 너클볼로 웨이크필드(82.7%)는 물론 디키(79.4%)보다도 적습니다.


너클볼은 특별합니다. 당연히 너클볼러도 마찬가지. 다큐멘터리 영화 '너클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너클볼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법'을 전수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어쩌면 이미 디키와 라이트도 어떤 식으로든 사제관계를 맺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야구팬들도 스탯캐스트 같은 도구 덕분에 너클볼에 대해 더 많은 걸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그만큼 너클볼을 지켜보는 재미도 더 커질 겁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Sportugese
• 내용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 블로그를 '좋아요' 해주세요


• 매일매일 스포츠 이야기를 나누시려면 Sportugese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주세요

• 트위터에 @sportugese도 열려 있습니다 

• 계속 블로그 내용을 받아보고 싶으시면 RSS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터넷 주소창에 http://kini.kr를 입력하시면 언제든 Sportugese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 떠나시기 전 이 글도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