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희귀종이 등장했습니다. 삼성 임현준(28·사진)이 주인공.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왼손 사이드암 투수입니다. 기록도 좋습니다. 25일까지 시범경기에서 여섯 번 등판해 6과 3분의 2이닝 동안 무실점. 반신반의하던 류중일 삼성 감독도 이제 "현재 왼손 구원 투수 중 제일 뛰어나다. 1군에서 활용할 만한 투수"라고 평가합니다.


왼손 사이드암 투수의 제일 큰 어드밴티지는 역시 희소성. 시범경기서 평균자책점 제로(0)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임현준은 "아직 제 투구폼이 낯설어서 상대 타자들이 잘 공략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요즘 삼진(6개)을 많이 잡아 보니 야구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임현준은 22일 안방 경기에서 LG 안익훈(20), 박용택(37), 이병규(7번·33)를 연속해 삼진으로 잡아 내며 성공적인 사이드암 변신을 알렸습니다.



왼손 투수가 가치 있는 것부터 희소성 때문. 올해 프로야구 소속 투수 305명 중에서 왼손으로 던지는 건 77명(25.2%)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래 다른 왼손 투수들처럼 오버핸드로 던졌던(사진) 임현준은 희소성을 더 끌어올리기로 했습니다. 305명 중에 한 명밖에 없는 왼손 사이드암 투수가 되기로 한 거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임현준은 입단 첫 시즌이던 2011년 1군 29경기에 등판해 2승 2홀드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할 정도로 주목받던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2014년 1경기, 지난해 7경기 등판이 전부였습니다. 왼손 투수이기는 했지만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오라"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등판 때마다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임현준은 지난해 7월 22일 팀이 4-14로 뒤진 9회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편하게 던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임현준은 아웃 카운트 두 개를 잡아내는 동안 6점이나 내줬습니다.


결국 안타깝게 그를 지켜보던 양일환 삼성 퓨처스리그(2군) 투수 코치가 사이드암 변신을 제안했습니다. 양 코치는 "임현준이 야구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면 작은 변화가 아닌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다. 임현준은 "코치님 제안을 받고 '야구 인생 한 번 걸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류 감독은 임현준을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임현준이 1군에서 가치 있는 투수가 되려면 오른손 타자 대처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야구에서 기록이 신뢰성을 갖추려면 표본이 아주 많아야 하지만 일단 현재까지 시범 경기에서는 일단 왼손 타자 상대 12타수 1안타(2루타), 오른손 타자 상대 8타수 1안타로 오른쪽 타자도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야구에서는 투수와 타자가 서로 타석과 투구 방향이 같을 때 투수가 유리합니다. 사이드암(언더핸드 포함)은 같을 때는 크게 유리하지만 다를 때는 크게 불리합니다. 최근 3년(2013~2015년) 프로야구 기록을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 사이드암은 모두 오른손 투수입니다.)


▌2013~2015 프로야구 상대 유형별 OPS(출루율+장타력)

 타자/투수  오른손  왼손  사이드암
 오른손  .769  .785  .745
 왼손  .793  .768  .831


그렇다면 왼손 사이드암은 왼손 타자에 크게 유리하고 오른손 타자에 크게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왼손 타자는 이미 희소성 때문에 왼손 투수에게 약한데다 왼손 타자보다 오른손 타자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왼손 투수는 사이드암으로 던져서 얻는 이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왼손 사이드암이 희귀종인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임현준 이전에 프로야구에 사이드암이 없던 건 아닙니다. 두산 김창훈(31·사진)은 아예 언더핸드 수준으로 팔을 내려 공을 던졌습니다. 2012년에는 28경기에 나와 21과 3분의 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2.08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은퇴 상태.


이보다 앞서 쌍방울과 삼성에서 활약했던 최한림(45)도 왼손 사이드암이었습니다. 최한림이 임현준이나 김창훈하고 달랐던 건 입단 때부터 사이드암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밖에 스리쿼터 형태로 던지던 이혜천(37·애들레이드)도 곧잘 팔을 내려 사이드암처럼 던질 때가 있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모리후쿠 마사히코(森福允彦·30·소프트뱅크)가 대표적인 왼손 사이드암 투수입니다. 임현준은 사이드암으로 투구 동작을 바꾸면서 모리후쿠가 던지는 영상을 많이 돌려봤다고 합니다. 역시 프로 입단 이후 사이드암으로 바꿔 성공한 케이스. 모리후쿠는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모리후쿠 이전에 제일 유명했던 건 기요카와 에이지(淸川榮治) 현 세이브 2군 투수코치(55)입니다. 1984년 히로시마에서 데뷔한 그는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다 보니 승패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었습니다. 데뷔 후 109번째 경기가 되어서야 생애 첫 승을 거뒀고, 데뷔 후 114경기까지 패전 투수가 된 적도 없었었습니다. 114경기는 연속 무패 행진은 당시 일본 기록이었습니다.


임현준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최한림이나 김창훈처럼 한두 시즌 반짝하는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일본 투수들처럼 성공가도를 달릴 수도 있습니다. 결국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겠죠. 확실한 건 그가 옆으로 던지는 데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상대 타자들은 그를 낯설어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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