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가는 대로 쳐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자료 보존 차원에서 일부 수정 및 가공을 거쳐 블로그에 남겨 놓습니다. 당연히 이게 정답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배구도 야구에서 세이버메트릭스처럼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구나'하는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예전에 이렇게 야구에서 상대팀별 평균자책점하고 똑같은 아이디어로 서브 리시브를 다룬 기사를 쓴 적은 있었습니다.
• 배구 경기는 결국 실점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그러니까 득점보다 실점이 승률 변화를 더 잘 설명한다는 뜻이다. (사실 야구도 그렇다.) 아래 그래프는 프로배구 2014~2015 시즌까지 팀별로 세트당 실점하고 승률 사이 상관 관계를 그린 것이다.
• 당연히 서브도 넣는 것보다 받는 게 중요하다. 올 시즌 현재까지 V리그 남자부에서 서브를 잘 받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OK저축은행 △대한항공 △삼성화재 △한국전력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우리카드 순이다. 한국전력하고 현대캐피탈이 자리를 바꾸면 현재 순위 그대로다.
• 거꾸로 서브를 가장 잘 넣은 그러니까 상대 리시브 성공률을 가장 떨어뜨린 팀은 승점 12점으로 (승점만 따지면) 공동 최하위인 KB손해보험이다. 물론 우리카드는 여기서도 꼴찌인데 그건 그냥 그 팀이 이래저래 못한다는 뜻밖에 안 되니까…
• 그런데 11년 동안 V리그 남자부에서는 서브 리시브 성공률(아래 그래프 x축)하고 공격 성공률(y축) 사이에 별 상관관계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통계적으로 별 의미는 없지만) 오히려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높으면 공격 성공률이 내려간다. 리시브 성공률은 속공이나 퀵오픈 성공률 변화도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서브를 잘 받는 것하고 상대 코트에 공을 꽂는 것하고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 바로 위에서 득점보다 실점이 중요하고 그래서 서브를 잘 넣는 것보다 잘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얘기해 놓고 무슨 소리냐고? 여기 정답이 숨어 있다. 서브를 잘 받는 팀은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디그(상대 득점을 막아내는 수비)도 더 잘한다. 시브에 이어 패턴 플레이로 득점에 성공하는 게 일단 보기에는 예쁘다. 수십 년 동안 코트 위에서 살아온 지도자도 속을 만큼. 그런데 통계적으로 보면 실제 효과는 다른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 따라서 수비와 공격을 잇는 세트(토스)가 중요하다. 기록으로 봐도 '세트당 세트'는 승률 변화를 제법 잘 설명하는 변수다. 물론 공격수가 점수를 올려야 세트 기록도 올라간다. 하지만 세트가 나쁘면 득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배구에서 실점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계속 득점에 성공하는 것이다. 배구에서 먼저 25점(또는 15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실점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 얀 스토크(32·체코)는 유럽배구연맹(CEV) 인터뷰에서 '세터하고 아직도 타이밍이 잘 안 맞을 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전력은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아 트레이드로 대한항공에서 세터 강민웅을 데려왔다. 삼성화재 그로저(31·독일)는 반대였다. 그는 독일배구협회 인터뷰에서 "삼성화재 세터는 아주 좋다"고 평했다. 단언컨대 유광우(30·사진 오른쪽)는 전 세계에서 리시브 결과에 관계 없이 높은 공을 가장 예쁘게 올리는 세터다. 이렇게 플레이하면 칭찬은 공격수에게 돌아가지만 승리(라고 쓰고 연봉이라고 읽는다)는 세터가 챙긴다. 그게 좋은 서브 리시브가 공격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리그에서 삼성화재가 최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던 이유다.
• 현대캐피탈이 몰락한 통계적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직) 국가대표 세터 두 명을 동시에 보유하면 세터 둘은 어떤 의미로든 자기 과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말해 올 시즌 초반 현대캐피탈이 잘 나간 건 그 팀 엔트리 어디에도 세터 권영민(35·현 KB손해보험)과 최태웅(39·현 현대캐피탈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캐피탈이 이제 젊은 세터 둘을 가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 겸 의문이다.
• 아래 그래프에서 위쪽은 어떤 플레이가 어떤 비율로 실제 득점하고 이어졌는지 나타내고 아래쪽은 전체 대비 각 플레이 비율이다. 역시나 프로배구 원년(2005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자료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역시 오픈 공격이 시도도 많고 득점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확률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 공격 유형별 성공률을 보면 △오픈 42.5% △후위 49.5% △속공 53.1% △퀵오픈 54.8% △이동 57.4% △시간차 57.9% 순. 만약 이게 시험 성적이라면 '우등생'은 어떤 성적표를 받을까. 당연히 오픈하고 후위에서 강세를 보여야 한다. 어려운 과목을 잘봐야 '엣지(edge)'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과목이 배점도 크다. 실제로 삼성화재는 이 기간 오픈 성공률 47.8%로 1위, 후위 성공률 54.4%로 (OK저축은행과) 공동 1위다.
• 그 다음 잘해야 할 건 시간차다. 남들은 다 잘하는 걸 혼자 망쳐서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삼성화재는 이 기간 시간차 성공률 63.0%로 1위다. 여기 재미를 들린 걸까. 삼성화재는 29일 경기 전까지 전체 공격 시도 중 13.0%, 득점 중 16.1%를 시간차로 만들어 내고 있다. 올 시즌 삼성화재 다음으로 시간차를 많이 쓴 한국전력(시도 7.3%, 득점 9.8%)하고 비교해도 적지 않은 차이다.
• 시간차처럼 좋은 서브 리시브가 나와야 가능한 속공도 마찬가지다. 이건 어지간히 잘해서는 '엣지'를 얻을 수 없다. 이동 공격이 남자부 경기에서 사실상 멸종한 공격 옵션이라고 치면 성공률이 가운데 끼어 있다. 이 분야에서는 당연히 OK저축은행이 독보적이다. 이 팀은 올 시즌 전체 공격 옵션 중 22.5%를 속공에 배당하고 있는데 이 부분 2위 삼성화재가 15.8%다. 오픈 득점 비율(23.2%)보다 속공 득점 비율(24.6%)이 높은 건 OK저축은행 한 팀뿐이다.
• 퀵오픈(옛 C퀵)은 애매하다. 이름 그대로 오픈하고 속공을 섞어 놓은 특징을 두루 가지고 있다. 지난 11년간 성공률은 여섯 가지 공격 패턴 중 4위고, 상대팀이 블로킹으로 잡아낸 비율은 9.6%로 3위다. (오픈이 10.9%, 후위가 10.4%, 그 다음이 퀵오픈.) 전체 점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위. 그래서 사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취향' 문제다. 시험 공부에 비유하자면 선택 과목이라고 할까. 대한항공 한선수()처럼 빠르게 공을 쏘는 세터가 있어 자신 있으면 쓰면 되지만 아니라면 굳이 쓰지 않아도 좋다. '뻥배구라는 비판이 싫다. 그러니 우리는 빠르게 가겠다'고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다.
• 사실 공격 옵션을 어떻게 섞어야 좋은지도 취향 문제다. 올 시즌 현재까지 공격 옵션을 가장 다양하게 쓰는 팀은 순위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OK저축은행이다. 그 다음은 (놀랍게도) 3위 삼성화재다. 이렇게 보면 공격 옵션이 다양한 게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2위 대한항공은 제일 특정 형태(라고 쓰고 퀵오픈이라고 읽는다)에 쏠림이 심한데 2위다. 두 번째로 공격 패턴이 단조로운 우리카드는 최하위고 말이다. 그게 배구를 숫자놀음으로 끝내지 않고 코트 위에서 직접 맞붙는 이유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