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황금사자기

from KBO 2015.06.18 19:18

같은 부 이헌재 선배가 올해 황금사자기 팸플릿용으로 쓴 글을 (나중에 참고하려고) 일부 수정·보완해 블로그에 남깁니다.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1946년 자유신문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청룡기보다 1년 늦게 시작했습니다. 청룡기는 1953년 조선일보에서 인수했기 때문에 단일 언론사 주최로 범위를 좁히면 황금사자기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게 됩니다. 숱한 명승부를 치르면서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황금사자기 69년 역사를 숫자로 돌아봤습니다.


1. 1947년 8월 21일.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운동장에서 동산중과 군산중의 역사적인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열렸습니다. 공식 명칭은 제1차 전국지구대표 중등야구 쟁패전. 치열한 예선을 거친 지역대표만 참가할 수 있어 대회 출전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하네요. 초대 대회 우승은 경남중(현 경남고)이 차지했습니다.


2. 7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지만 최우수선수(MVP)를 두 차례 차지한 선수'야구 천재' 박준태 전 LG 퓨처스리그(2군) 코치(48)가 유일합니다. 박 전 코치는 광주일고 2학년이던 1983년 제37회 대회에서 타율 0.450의 맹타를 휘둘러 MVP에 선정됐습니다. 이듬해 제38회 대회에서는 경남고하고 맞붙은 결승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하며 2년 연속 MVP가 됐습니다.


3. 경남중은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대회 사상 유일하게 3연패 위업을 달성했심더. 경남중에는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 장태영 선생(1929~1999년 작고)이 있었습니다. 경남고 야구를 최초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한 장 선생은 황금사자기에서 3년간 무패 신화를 남겼습니다.


4. 광주일고는 황금사자기에서 5차례나 정상에 오른 명문이랑께요. 5회 우승은 두 번째로 많은 횟수. 그런데 광주일고는 아따 그냥 우승한 하는 게 아닙니다. 광주일고는 1984년 제38회 대회 경남고와의 결승에서 4-0 완봉승을 거둔 것을 비롯해 4차례나 결승전에서 셧아웃을 기록했습니다. 2010년 제64회 대회에서는 현 KIA 유창식(23)이 장충고를 상대로 짜릿한 1-0 완봉승을 일궈냈습니다.


5. 군상상고가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 1972년 제26회 대회 결승전이 계기였습니다. 군산상고는 9회초까지 부산고에 1-4로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9회말 극적인 역전에 성공하며 첫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5-4였습니다.


6. 2년 연속 정상에 오른 학교는 6개교입니다. 3연패의 경남고를 필두로 경동고(1959~60년)와 광주일고(1983~84년), 덕수상고(1994~95년), 신일고(1996~97년)가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장충고가 2006년과 2007년 2년 연속 황금사자기를 제패했습니다.


7. 황금사자기 원년 멤버는 7개 학교였습니다. 원래 8곳이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강원중이 화재로 불참했습니다. 당초 전국 8개 지역을 대표하는 8개 팀이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전한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학교 건물이 모두 타버리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강원 대표가 불참한 것. 올해는 주말리그를 거쳐 출전권을 얻은 36개교가 출전합니다.


8. 신일고는 황금사자기의 팀입니다. 1976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8차례나 황금사자기 정상에 올랐습니다. 처음 출전한 1976년 제30회 대회에서 박종훈 전 LG 감독(56), 양승호 전 롯데 감독(55) 등을 내세워 우승한 뒤 1978년, 1987년, 1991년, 1993년, 1996~97년, 2003년에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조성민(1973~2013), 김재현 현 한화 코치(40), 현 한화 조인성(40), 안치용 KBSN 해설위원(36), LG 봉중근(35) 등이 신일고가 배출한 스타입니다.


9. 9이닝 동안 안타 한 개도, 점수 한 점도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노런. 전국 고교대회 최초 노히트노런은 황금사자기에서 나왔습니다. 1970년 9월 25일 열린 제24회 대회 승자 결승전에서 성남고 왼손 투수 노길상(한국야구인명사전에도 미상)은 최강 경북고를 상대로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1968년 부산고에서 학교를 옮기면서 선수 등록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노길상은 이해 팀을 최종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와 우수투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10. 1956년 제10회 대회는 황금사자기 역사에 없습니다. 서울운동장 야구장 확장 공사로 경기를 치를 곳이 없어 대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듬해에도 확 공사가 이어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천으로 장소를 옮겨 대회를 치렀습니다. 당시 대회 우승 팀은 신인식 선생(76)이 투수로 나선 안방 팀 동산고. 1950년 4회부터 1953년 7회 대회까지는 6·25전쟁으로 개최하지 못해 지난해 68회 대회까지 우승팀은 63번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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