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딸보부터 뚱뚱보까지 모두 제 몫을 다하는 종목은 야구뿐이다. 야구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던 '이해찬 키즈'의 꿈이 실현된 공간이다. 숱한 이들이 패자부활전 무대를 거쳐 다시 승자가 될 기회도 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잘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를 찾으면 된다. 홈런왕 삼성 이승엽조차 시작은 실패한 투수였다.

 

야구에서는 4번 타자라고 타석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넥센의 현대 시절을 포함하면 아직 우승을 못해 본 팀은 올해 1군 무대에 뛰어든 NC뿐이다. 가장 불쌍한 꼴찌 팀도 10번 중 2번은 이긴다. 야구는 '역대 최다 대타 홈런'처럼 벤치 선수를 위한 기록도 잊지 않는다.

 

야구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스포츠다. 야구 종주국 미국이 해외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자랑스레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야구는 민주주의다".

 

2013년 토요판 커버스토리 '대한민국은 왜 야구에 열광하는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래도 정말 이렇게 위대한(?) 야구 선수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진 주인공은 미국 세인트토마스대 투수 벤 안쉐프(23)입니다. 얼핏 봐도 정말 대단한 사이즈. 세인트토마스대 홈페이지 프로필에 따르면 키는 6피트2인치(약 188㎝)이고 몸무게는 300파운드(약 136㎏)가 나갑니다.

 

성적만 놓고 보면 평범한 안쉐프가 유명 인사(?)가 된 건 29일(현지 시간) 아이다호 주 루이스턴에서 열린 미국대학선수협회(NAIA) 월드시리즈에 등판하며 TV 중계를 탄 덕입니다. 이 경기에 선발 등판한 그는 4와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아내며 1실점으로 루이스클라크대 타선을 막았습니다.

 

 

안쉐프가 5회에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던 건 팔꿈치에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 팔꿈치인대접합(토미존) 수술을 받고 난 뒤 첫 시즌이라 안정이 필요했던 겁니다. 사실 4와 3분의 1이닝도 안쉐프가 이번 시즌 소화한 가장 긴 이닝이었습니다. 세인트토마스대는 8회 6실점하며 결국 7-10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운동에 재능을 보이는 많은 미국 학생이 그런 것처럼 안쉐프 역시 학창 시절 야구뿐 아니라 미식축구와 레슬링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로는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손꼽히는 수비 라인맨이었고, 레슬링에서도 100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거대하고 건강한 청년이지만 어릴 때부터 건강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태어날 때 몸무게는 3.9㎏로 정상. 문제는 심장과 폐 기능이 다 자라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숨을 거두는 상황. 의료진은 아직 임상실험도 다 끝나지 않은 시술을 제안했고 부모님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체외막산소화장치(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를 활용한 치료법이었죠. ECMO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치료 받은 바로 그 장치입니다.

 

안쉐프는 "늘 그때 저를 살려주신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훌륭하게 살려고 애쓸 수 있는 건 모두 그때 그 분들 덕입니다. 그 뒤로 아무 탈이 없어요. 이제는 심장 박동이 오히려 느린 편입니다. 보통 '덩치'들은 심장이 빨리 뛰는데 말이죠. 저는 완전 행운아에요"하고 말했습니다.

 

 

원래 그는 레슬링에 더 흥미를 보였지만 "대학 이후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야구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조지아대로 진학했던 그는 1년 뒤 플로리다주립대로 옮겼고, 지난해 센트럴아칸소대를 거쳐 올해 세인트토마스대에 안착했습니다.

 

고교 시절 안쉐프는 "지금 던지는 것처럼 계속 잘 던지다 보면 야구에서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부터 '저 덩치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사실. 그래도 안쉐프가 '야구는 민주주의'라는 명제를 현실에서 증명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야구는 땅딸보부터 뚱뚱보까지 모두 제 몫을 다하는 스포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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