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메이저리그 밀워키 외야수 크리스 데이비스(28)가 담장 밖으로 타구를 잘 날려 놓고도 하마터면 홈런을 하나 날려 먹을 뻔했습니다. 누의 공과(壘의 空過) 때문입니다.

 

누의 공과는 문자 그대로 베이스를 밟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는 뜻입니다. 야구 규칙에는 "3아웃이 되어 이닝이 끝나기 전에 주자가 정규로 1루, 2루, 3루, 본루에 닿을 때마다 1점이 기록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베이스를 그냥 지나치면 홈런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25일(현지 시간) 안방 경기에 2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데이비스는 1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들어서 샌프란시스코 투수 팀 린스컴(31)을 상대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문제가 생긴 건 그가 득점하던 순간. 샌프란스시코 포수 앤드루 수색(25)은 데이비스가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색은 더그아웃으로 신호를 보냈고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나와 어필했습니다.

 

주심을 맡고 있던 윌 리틀 심판도 수색하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린스컴은 다음 타자 라이언 브론(32) 타석 때 수색에게 '송구'를 했습니다.

 

수색이 홈 플레이트를 밟자 리틀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데이비스가 홈을 밟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에 아웃 판정을 내린 것. 만약 이 판정이 맞았다면 데이비스가 친 홈런은 3루타로 기록하고 득점은 사라지게 됩니다.

 

밀워키로서는 두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긴 상황. 크레이그 카운슬 밀워키 감독은 비디오 판독(챌린지)을 신청했습니다.

 

밀워키로서는 다행스럽게 판정이 바뀌면서 데이비스는 홈런을 되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약 3분 사이에 데이비스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셈이 됐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데이비스는 3회말에 연타석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허투루 주루할 리가 없는 법. 데이비스는 홈 플레이트 한 가운데를 밟으며 확실히 '홈런 도장'을 찍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송지만이 누의 공과 탓에 홈런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송지만은 1999년 4월 21일 청주 경기에서 6회 2사 1루에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홈런 타구를 날렸습니다.

 

기쁨도 잠시. 상대팀 쌍방울을 이끌고 있던 김성근 감독은 나광남 주심에게 다가가 "송지만이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심판진에서 이 어필을 받아들이면서 송지만의 홈런은 3루타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 송지만은 "나는 분명히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고 주장했지만 이튿날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송지만이 홈런 칠 때 1루 주자였던 로마이어(50). 그는 송지만이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는 걸 보고 "터치 더 플레이트(Touch the plate)"라고 세 번이나 외쳤지만 송지만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LG 외국인 타자였던 알칸트라(42)는 한국말을 몰라 '누의 공과'를 기록했습니다.

 

알칸트라는 홈런을 치면 하늘에 대고 성호를 긋는 세리머리를 하곤 했습니다. 2003년 8월 7일 문학 경기서도 그랬습니다. 7회 2사 2루에서 홈런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에 열중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홈플레이트를 보지 못해 몇 ㎝ 차이로 홈 플레이트를 밟지 못했다는 것. 그때 SK 포수 박경완(43)이 문승훈 주심에게 큰 소리로 "안 밟은 거 아니에요?"하고 물었습니다.

 

문 주심은 답이 없었습니다. 어필 상황에 대해 심판이 먼저 정보를 흘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경완이 투수 조웅천한테 공을 받아 홈 플레이트를 터치하자 문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박경완은 "큰 소리로 물어 놓고 아차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알칸트라가 다시 돌아와 홈 플레이트를 밟으면 그대로 홈런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프로야구 역대 누의 공과

 구분  날짜  구장  팀  선수  상대팀  비고
 1  1984.9.22  구덕  롯데  김석일  삼성  
 2  1985.6.15  대전  OB  윤동균  삼성  
 3  1985.7.31  대구  삼성  홍승규  청보  
 4  1986.4.11  잠실  OB  윤동균  빙그레  
 5  1986.5.14  대구  삼성  이만수  롯데  
 6  1988.6.07  인천  해태  장채근  태평양  
 7  1988.8.30  인천  태평양  여태구  롯데  
 8  1988.9.07  인천  삼성  이만수  태평양  
 9  1989.5.12  인천  OB  이명수  태평양  
10  1989.9.24(DH2)  인천  OB  김용희  태평양  
11  1990.6.05(DH2)  대전  빙그레  고원부  롯데  
12  1990.7.24(DH2)  사직  빙그레  김상국  롯데  
13  1990.7.26  잠실  해태  이건열  LG  
14  1994.5.29  인천  LG  허문회  태평양  
15  1995.8.11  대전  한화  김용선  삼성  
16  1996.4.14  무등  쌍방울  백인호  해태  
17  1996.6.08(DH2)  대전  한화  김주성  LG  
18  1998.5.15  인천  현대  장정석  해태  
19  1999.4.21  청주  한화  송지만  쌍방울  홈런 후
20  2001.5.25  잠실  SK  송재익  LG  
21  2003.8.07  문학  LG  알칸트라  SK  홈런 후
22  2003.8.10  대구  삼성  현재윤  LG  
23  2004.7.23  문학  SK  송재익  KIA  
24  2006.5.02  잠실  KIA  이종범  두산  
25  2007.7.14  문학  SK  조동화  두산  
26  2008.9.24  문학  LG  임도현  SK  
27  2009.6.23  잠실  히어로즈  장기영  LG  
28  2009.9.25  무등  KIA  차일목  히어로즈  
29  2011.5.03  사직  삼성  채태인  롯데  '채럼버스'
30  2013.9.17  문학  정상호  정상호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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