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제2회 마닐라(필리핀) 아시아 경기에 참가해 종합 3위 성적을 거둔 한국 선수단 환영식. 국가기록원 제공


한국은 1951년 열린 제1회 뉴델리(인도) 아시아경기 때는 6·25 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1954년 제2회 마닐라(필리핀) 대회 때부터 개근 중입니다. 금메달도 중국(1191개)과 일본(910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617개나 땄습니다. 한국이 따낸 아시아경기 첫 금메달은 누가 어떤 종목에서 따냈을까요?

1954년 5월 2일자 동아일보는 '마니라(마닐라) 상공에 맨 처음 오른 태극기'라는 제목으로 최윤칠(86·사진) 옹의 금메달 획득 소식을 전했습니다. 최 옹은 대회 개막 이튿날 육상 1500m에서 3분56초2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아시아 최고기록이었습니다.

최 옹은 '마라톤 왕'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원래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참가했던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이 기대되는 유망주였지만 결승점 4마일(약 6.4㎞)을 남기고 기권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아무리 컨디션이 나쁘다 하더라도 2~3위 안에는 들 것으로 예상했다"며 "어떤 이는 라디오 중계를 듣다가 격분하여 라디오를 부셔버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 때는 동료 선수가 잘못 전한 정보 때문에 4위로 골인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길가에 나와 응원하던 한국 선수가 "이대로 들어가면 동메달"이라고 말해 페이스를 조절했던 것이죠. 당시 그는 2시간26분36초로 당시 올림픽 기록을 뛰어 넘었지만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1922~2000·체코슬로바키아)이 2시간23분3초로 그보다 먼저 들어왔습니다.


최 옹은 결국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명예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마닐라 아시아경기 때는 마라톤이 정식 종목이 아니라 트랙 선수로 뛰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당시 그가 딴 금메달은 당시 대회 첫 번째 금메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이전 기록을 8초나 단축한 초인간적인 동양 신기록이며 마라톤 선수가 단거리 경주에서 우승한 것은 최 선수가 역사상 최초"라고 극찬했습니다. 최윤칠은 5000m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아경기를 마쳤습니다.

최 옹은 전성기 시절 175㎝, 70㎏의 근육질로 마라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체격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트랙 장거리에 집중했다면 한국 선수 첫 번째 올림픽 메달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시대 스포츠 스타들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한국이 이만큼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 옹은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 때 코치로 이창훈(1935~2004)의 마라톤 금메달을 도우며 그나마 마라톤 금메달 한을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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