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타자는 방망이만 가지고 팀에 기여하는 자리. 그렇다면 당연히 팀 평균 공격력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둬야 합니다. 실제로 13일 경기 전까지 프로야구 9개 구단 중 7개 구단에서 선발 지명타자가 기록한 OPS(출루율+장타력)가 팀 평균 OPS보다 높았습니다.

잠깐만? 그럼 2개 구단은 지명타자가 팀 평균보다 OPS가 떨어진다고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한화와 넥센은 지명타자 OPS가 팀 OPS보다 낮습니다(표 참조).

 순위  구단 지명타자 팀 전체 차이 인원
 1 SK .998 .787 .211 9
 2 롯데 1.017 .810 .207 3
 3 KIA 1.002 .806 .196 8
 4 두산 .961 .822 .139 2
 5 삼성 .895 .863 .032 4
 6 NC .855 .830 .025 5
 7 LG .785 .765 .020 9
 8 한화 .723 .776 -.053 3
 9 넥센 .775 .899 -.124 12

그런데 두 팀 사정을 살펴 보면 지명타자 포지션이 약한 이유가 서로 다릅니다. 넥센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선수(12명)를 지명타자로 썼습니다. 이성열과 윤석민이 각 26경기에 지명타자로 나와 가장 많았고 안태영이 12경기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넥센이 '지명타자 돌려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박병호 11경기 △김민성 7경기 △로티노 5경기 순입니다. 계속해 이택근이 세 경기, 서건창과 강정호도 각 두 경기서 선발 지명타자로 나왔습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장기 레이스에서는 선수들 체력 안배가 꼭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강)정호가 휴식이 필요하다면 (김)민성이를 유격수로 기용하고 정호가 지명타자로 나오는 식으로 라인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럴 때는 윤석민이 3루수로 나오면 그만. 그러니까 넥센에게 지명타자 슬롯은 '체(體)테크'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넥센은 지명타자 기록만큼 주전 선수들이 지명타자로 나왔을 때 대신 나온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선보였는지 살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지명타자 기록에는 휴식이 필요한 선수들 기록이 노이즈처럼 섞여 있으니까요. 윤석민은 3루수로 출전한 17경기에서 OPS .981을 치면서 제 몫을 다했습니다. 이성열은 13경기에 우익수로 나와 1.039를 쳐 윤석민보다도 낫습니다. 지명타자 돌려쓰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겁니다.

한화 김응용 감독은 반대입니다. 김 감독이 지명타자로 쓴 선수는 세 명뿐입니다. 그나마 이용규가 93경기 중 84경기(90.3%)에서 선발 지명타자 자리를 맡았습니다. 발 빠른 외야수 이용규를 △NC 이호준 94.8% △두산 홍성흔 93.3% △삼성 이승엽 92.5% 같은 노장 붙박이 지명타자 쓰듯 기용한 겁니다.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수비가 어려운 선수를 계속 라인업에 집어 넣으려다 보니 생긴 일이죠. 그 탓에 한화는 두 가지를 잃었습니다. 당연히 공격과 수비가 그 두 가지.

한화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이용규는 전반기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수비가 안 됐으니까요. 뒤집어 얘기하면 타격과 주루 플레이는 가능하다는 얘기. 김 감독은 이용규에게 풀 타임을 뛰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더니 6월 말에 "올해는 이용규의 수비 복귀를 포기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부상을 안고 뛰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이로써 한화는 리그 평균(.889)보다 떨어지는 지명타자 자리와 리그에서 최고 자리를 다투는 이용규의 중견수 수비를 맞바꾼 셈이 됐습니다.

또 이용규가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김태완과 최진행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김태완은 선발 1루수로 나오면 OPS 1.198을 기록했지만 벤치를 지키는 일이 더 많았고, 최진행(.829)은 좌익수 평균 공격력(.826)을 안기는 대가로 자기 외야 수비가 얼마나 서툰지 한화 팬들에게 보여줘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포지션 동맥경화 현상이 빚어진 겁니다. 이러니 한화가 성적이 좋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고 만 거죠.

그러면 메이저리그 사정은 어떨까요?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15개 팀은 평균 12.3명을 지명타자로 기용했습니다. 이는 데이비드 오티스 같은 '전문 지명타자'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반증입니다. 김 감독이 21세기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확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원래 '베이스볼 비키니'에 쓰려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교황님 방문 기념으로 기사가 빠져서 블로그에 남깁니다. 물론 핑계지만 기명 칼럼을 시작하고 나니 블로그에 포스트 하나 남기기가 참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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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BigTrain 2014.08.18 09:4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시즌 전부터 이용규와 프런트가 지명타자 출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을 때 현장에서 이걸 막았어야 했다고 봤는데 그대로 출전을 강행하더군요.

    6월쯤 복귀해서 중견수로 뛰었으면 올해같은 유례없는 4위다툼에 의미있는 경쟁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