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두산은 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이라는 잠실을 홈 구장으로 쓰면서도 올 시즌 현재까지 팀 OPS(출루율+장타력) 1위(.782)를 달리고 있습니다. 출루율(0.383) 1위에 장타율은 넥센(.411)에 이어 2위(.399) 기록. 당연히 팀 득점(5.45점)도 리그 1위입니다.

문제는 투수진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 두산은 올 시즌 경기당 5.23점을 내주면서 한화(6.02)에 이어 두 번째로 점수를 많이 내주고 있습니다. 이러면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죠. 최근 3연패에 빠지면서 22승 1무 22패로 리그 5위에 처져 있습니다. 이게 겉보기 성적으로 두산이 최근 침체에 빠진 이유입니다.

이 기사로 살펴 본 것처럼 두산은 불펜 부하가 심각하기로 손꼽히는 팀입니다. 사실 이는 이용찬(24·왼쪽 사진)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뽑였다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외국인 투수 올슨(30·오른쪽 사진)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 등을 고민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두산의 포지션 중복을 감한해 보면 과연 이런 선수단 구성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명타자는 물론 1루수로도 쓸 수 있는 최준석(30)은 올 시즌 81타석에서 .318/.432/.470을 치고 있습니다. 지명타자로만 쓸 수 있는 홍성흔(36)은 192타석 .296/.361/.414입니다. OPS .775를 치는 홍성흔한테 밀려서 OPS .902인 최준석이 경기에 못 나오는 겁니다. 역시 1루를 볼 수 있는 오재원(28)은 .283/.425/.425입니다. 방망이만 보더라도 세 선수 중 두 명을 써야 한다면 최준석, 오재원을 쓰는 게 맞습니다.

롯데 시절이던 2009년 6월 28일 대전 한화 경기에서 1루수로 출전한 홍성흔이 평범한 번트 타구를 지루해 하는 팬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홍성흔은 김진욱 두산 감독이 자유계약선수(FA)로 모셔온 4번 타자. 함부로 라인업에서 뺄 수가 없는 노릇. 그 덕에 역시나 올 시즌 FA를 앞둔 최준석은 제대로 기회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나마 김진욱 감독에게 다행스러운(?) 건 김동주(37)가 .256/.356/.317로 부진한 채 2군으로 내려갔다는 겁니다. 아니, 김동주가 지명타자로 출전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리 부진했을까요?

두산 내야수 오재일이 "중학교 때부터 지켜봐준 (김진욱) 감독님께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며 투구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잊혀진 선수는 또 있죠. 지난해 김 감독이 넥센에서 데려온 오재일(27). 역시 1루수나 지명타자로 써야 하는 오재일은 2군 무대를 .357/.420/.557로 씹어 먹고 있지만 올릴 자리가 없습니다. 오재일 영입보다 앞서 2차 드래프트 때 1루·지명타자 자원 오장훈과 김강을 선택한 건 다른 구단이었나요? 이성열(29) 내줄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투수를 받아왔어야 합니다. 아니, 홍성흔을 영입하지 않고 오재일이라도 키웠어야 하는 게 맞는 처사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됩니다. 2, 3루가 가능한 김동한(25)은 2군에서 .371/.452/.562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경민(23), 윤석민(28)한테도 제대로 기회를 안 준 구단이 대졸 군미필자인 김동한에게 얼마나 기회를 줄까요? 뇌진탕 후유증이 우려되는 양의지를 포수 자리에 계속 고집하면서 "이제 해줄 때가 됐다"고 말하는 게 김 감독입니다. 제가 최재훈(24), 박세혁(23)이었다면 정말 야구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야수들 다 안고 있는 동안 투수 김성배(32), 김승회(32), 고창성(29), 이재학(23)이 여러 경로로 팀을 떠났습니다. 김성배, 이재학, 고창성은 그렇다 칩시다. 제도가 불합리한 측면도 있었고, 이들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김승회는 홍성흔을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두산 마운드를 지키고 있을 선수. 그 대신 이혜천(34), 서동환(27), 김강률(25), 안규영(25)이 팀에 남았습니다.

결국 1루·지명타자 자리에 선수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느라 투수들을 다 날린 모양새입니다. '안고 죽자'는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투수를 보호했어야 하는 게 맞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팀 야수들은 쑥쑥 키우는 팀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들 다 풀어주고 투수 없다고 수술 경력 있는 노경은(29)은 선발 두 번 연속 128구를 던져야 했습니다.

프로야구 한 시즌은 128경기. 주전만큼이나 백업이 중요하고, 선발 투수 못잖게 구원진 구성도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주전 전력이 강해도 한 쪽으로 치우친 선수 구성으로는 장기 레이스를 치르기 쉽지 않은 게 당연한 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쌓인 야수들 내주고 투수 받아 오면 됩니다. '안고 죽지' 말고 '같이 살자'고요. 아, 그런데 트레이드 활발하게 해도, 감독이 계속 이 모양이면 소용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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