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공룡 새끼, 지석훈

from KBO 2013.05.26 01:21

자진 2군행이 바꾼 운명

2007년 7월 그 어느 무덥던 날. 감독실을 찾은 4년차 프로야구 선수는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감독님 기회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2군에서 더 훈련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경기도 원당 2군 훈련장을 향하는 길에서 이 선수는 상상이라도 했을까. 이 자진 2군행이 그의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사건이 되고 말리라는 걸 말이다.

이 에피소드 주인공은 이제는 NC에서 뛰는 지석훈(29). 2007년 새로 현대를 맡은 김시진 감독은 지석훈을 주전 유격수로 낙점했다. 김 감독은 4월 17일부터 7월 26일까지 치른 75경기 중 67경기(89.3%) 선발 유격수로 지석훈을 내보냈다. 그러나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지석훈은 .176/.270/.202를 때리는 데 그쳤다. 홈런 2개에 16타점.

김 감독이 지석훈을 2군으로 보내고 선택한 주전 유격수는 그해 신인 황재균이었다. 황재균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41경기(40경기 선발)에 나섰고 정확히 타율 .300으로 시즌을 마쳤다. 지석훈은 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 무대 4경기에서 2타석에 더 들어섰을 뿐이다.

팀이 히어로즈로 이름을 바꾼 이듬해, 시즌을 시작하면서 이광한 감독이 선택한 주전 유격수 역시 황재균이었다. 그가 부진하자 이 감독은 3루를 보던 강정호와 자리를 맞바꿨다. 지석훈은 이해 12경기밖에 뛰지 못했고 2009년 상무에 입대했다.

고교 4대 유격수 출신 대수비 요원

고교 시절 지석훈은 나주환(천안북일고·현 SK) 박경수(성남고·현 LG) 서동욱(경기고·넥센)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로 불렸다. 휘문고 2학년이던 200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는 인천 동산고 송은범(현 KIA)로부터 연타석 홈런을 뽑아내며 모교에 이 대회 첫 우승 트로피도 안겼다. 최우수선수(MVP)와 더불어 홈런왕도 그의 차지였다.

프로야구 현대는 그를 2003년 드래프트 때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하며 높은 기대를 드러냈다.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권이 없던 현대로서는 사실상 1차 지명. 팀 선배 박진만조차 그의 수비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프로 세계는 지석훈에게 너무도 냉정했다.

프로 첫 해였던 2004년 1군 무대서 5경기밖에 못 뛴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박종호, 박진만이 모두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팀을 떠난 2005년에는 61경기나 뛰었지만 타율 .179에 그쳤다. 2006년에 나아진 게 .208이었다. 어느덧 그는 2년 후배 차화준에게도 밀리는 선수가 됐다.


2011년 제대 후 그가 팀에 돌아왔을 때 황재균은 롯데로 떠났지만 강정호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완전히 꿰찬 다음이었다. 전년도에 타율 .257밖에 못 친 김민우도 그에게는 넘어서기 힘든 벽이었다. 2012년에는 서건창이 등장해 2루를 자기 영역으로 만들었다. 3루 역시 황재균 대신 롯데에서 건너 온 김민성 차지였다. 기회가 올 때면 아주 가끔씩 장타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지석훈은 대수비 요원으로 분류하는 게 맞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통산 타율 .188, 미운 공룡 새끼


결국 올 4월 17일 이제 넥센이 된 그의 소속팀은 이창섭, 박정준과 함께 그를 내주고 NC로부터 송신영, 신재영을 받아오는 3 대 2 트레이를 단행했다. 공교롭게도 한때 그의 자리를 위협했던 차화준의 수비 불안이 NC가 그를 필요로 했던 결정적 이유였다.

지석훈은 트레이드 이튿날 곧바로 4타점을 쓸어 담았다. 4월 19, 21일 친정팀과 맞대결에서는 7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24일 첫 안방 경기에서는 안타 2개를 터뜨리며 자기 존재감을 알렸다. 어버이날에는 올 시즌 처음이자 이적 후 첫 번째 홈런도 터뜨렸다.

25일 현재 지석훈은 여전히 규정 타석에는 모자라지만 정확히 타율 .300에 OPS는 .867이나 된다. 넥센 이성열(.853)보다 높은 기록이다. 특히 2루타는 11개로 이승엽(15개)에 이어 김태균(한화), 나지완(KIA)과 함께 공동 2위다. 출전 기회가 늘어나면서 '펀치력'이 좋아지고 있는 것. 2007년 김시진 감독이 기대했던 모습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석훈은 올해로 어느덧 프로 10년차,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됐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최고 전성기는 여전히 열여덟 까까머리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그래서 어쩌면 그에게 20대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수원구장 한 구석에서 그 누구 못잖게 그를 비난했던 한 사람으로서 지석훈이 NC에서 만들어갈 아름다운 30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처음부터 그의 20대는 그저'미운 공룡 새끼'로 예정돼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석훈아, 기대도 참 많이 했고 
그만큼 욕도 참 많이 했다 

사실은 한동안 널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음 주중 3연전에 널 상대하기가 두려울 지경 
비록 다른 팀 유니폼 입었지만 대견하다 

석훈아, 요즘에도 어머님 매일 야구장에 오시니? 
이번에는 제발, 꼭, 반드시 터져 효도하거라 

그래도 옛정이 있을 테니 
3연전에는 좀 살살 plz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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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TS 2013.05.26 09:5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황재균이 기용되기 시작할 무렵도 나름 지석훈이 꽤 방망이가 달아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황재균이 너무 잘해줬었죠. 여튼 NC로 가서 주전자리를 잡을 수 있던건 지석훈 본인에겐 천운이 아닐까 싶네요. 필요했던건 기회도 기회겠지만 1군무대에 대한 동기부여 였는지도...

    •  address  modify / delete 2013.05.26 16:02 신고 BlogIcon kini

      타격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내리지는 않았겠죠 ^^;
      2군 가기 전 10게임에서 .167/.348..222였습니다.

      정말 1군 선수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때 너무 부진했죠
      이후에는 기회가 없어다손 치더라도 말입니다

  2. BlogIcon 마플 2013.05.26 21:1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래서 환경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트레이드도 그렇고 마이너 FA 개념도 그렇고 규정이 리그를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텐데요. 이제 '안고 죽자'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좀 같이 살자 휴~

  3. BlogIcon 김영언 2013.05.27 20:5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생각해 보면

    김성배 같은 선수도, 신용운 같은 선수도, 지석훈 같은 선수도

    2군에 득실될 수 있겠죠.

    그나마 2차 드래프트를 하는 건 정말 한국프로야구에 엄청난 한걸음인 것같네요..

    보낸 선수가 잘하는 거 배아파 하지 말고 온 선수 제대로 키워볼 생각 다른 백업 찾아볼 생각 좀 했으면..




    뭐 김민성 잘 할 때 배아프기는 하지만..ㅋ

  4. BlogIcon 닥슈나이더 2013.06.14 08:4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뭐 2군에서 사라진 선수중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대 면제도 받은 제친구 장영균이 있죠......ㅠㅠ;;;
    삼성에서 다른팀으로는 트레이드 안시켜주는데.. 동시대에.. 같은 포지션 같은 왼손으로....
    이승엽과(심지어 동갑) 양준혁 선수가 있었다는게.....

    •  address  modify / delete 2013.06.14 12:17 신고 BlogIcon kini

      "누군가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때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에 하나씩 터진 바가지 안타 덕에
      양키스타디움에 선다."

  5. BlogIcon 알거없고 2015.09.14 09:1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드디어 터졌네요 20150913. 5타수 5안타 2홈런 4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