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Speed Score!

모두가 '발야구' 이야기로 바쁘다. 지난해 주루코치로 팀 도루 1위를 이끈 넥센 염경엽 감독은 "아무래도 올해 트렌드는 뛰는 야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지난 해 넥센을 맡았던 롯데 김시진 감독도 "도루 실패를 겁내면 안 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뛰어야 사는 법을 안다"며 주루 플레이에 적극성을 주문했다. KIA 선동열 감독 역시 "선수들에게 최대한 그린라이트(코치 사인 없이도 주자가 자기 뜻에 따라 도루를 감행할 수 있는 자격)를 주겠다"고 밝힌 상태.

그런데 도루는 왜할까? 당연히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1루보다는 2루에, 2루보다는 3루에 주자가 있을 때 득점하기가 쉽기 때문. 도루는 그저 주루 플레이의 한 종류일 따름이다. 이에 세이버메트릭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빌 제임스는 △도루 성공률 △도루 시도율 △3루타 비율 △득점 성공률 등을 기준으로 스피드스코어를 고안했다. (이 방식은 팬그래프에서 쓰는 것. 빌 제임스 핸드북에서는 여기에 △주자로서 병살 비율과 △수비 범위·Range Factor까지 포함해 계산한다.)

강명구 Out!

지난 2시즌 동안 50번 이상 주자로 나선 선수 가운데(이게 스피드스코어 기준) 가장 빠른 선수는 당연 강명구(삼성)다. 강명구는 21.6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피드스코어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가 '전문 대주자'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91경기나 대주자로 나왔으니 통계에 왜곡이 있는 건 당연한 일.

2012시즌 2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로 범위를 좁히면 가장 빠른 세 선수는 서건창(넥센) 이대형(LG) 정수빈(두산)이었다. 세 선수의 스피드스코어는 모두 8.3. 그 다음 정수성(넥센)이 7.7로 뒤쫓는다. 오재원(두산)은 7.6, 정형식(삼성)은 6.9다. 그 뒤를 장기영(넥센)이 6.8로 바짝 붙어있다. 그밖에 △김주찬(전 롯데) 6.5 △김상수(삼성) 6.4 △전준우(롯데) 6.3 △이용규(KIA) 6.2 △배영섭 조동찬(이상 삼성) 각 6.0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거꾸로 최고령 최동수(LG·0.7)가 발이 가장 느렸고, 정상호(SK·0.8) 장성호(전 한화·1.1)가 '느긋하게' 뒤따르는 모양새. 최준석(두산·1.3) 진갑용(삼성·1.4)도 몸매를 숨기지 못했고, 이호준(전 SK·1.7)도 신생팀 NC에 발로는 별 도움이 못 될 것 같다. 김태균(한화·1.8)은 역시 연봉은 발이 아니라 방망이로 탄다는 걸 증명했다. 강민호(롯데·1.9) 차일목(KIA·2.0)처럼 젊은 포수들도 발은 느렸고, 윤석민(두산·2.0) 역시 거포 유망주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허도환(넥센·2.2)은 그나마 이 몸개그가 무척 아쉽지 않을까?

넥센, 마!

그럼 이 점수를 구단으로 확장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하자. 주전 9명 성적만 내는 거다. 주전 기준은 타석수. 만약 상위 9명 안에 드는 선수가 팀을 옮겼다면 새 팀에 이 점수를 반영하자. 그러면 아래 같은 결과가 나온다. 참고로 리그 평균은 4.3이었다.

순위 구단 득점 도루 스피드스코어
1 넥센 549 179 5.1
2 삼성 628 125 4.7
3 KIA 553 132 4.6
4 롯데 509 119 4.1
SK 565 104
LG 544 140
7 한화 509 107 3.8
8 두산 524 116 3.5

넥센은 서건창 정수성 장기영이 주전인 이상 다른 팀보다 우위를 점하는 게 당연한 일. 물론 올해는 정수성이 지난해만큼 경기에 나설 확률은 떨어질 터. 그래도 중심타선에서 박병호(4.3) 강정호(4.2) 이택근(4.0) 모두 느린 선수가 아니라는 건 분명 장점이다.

삼성도 만만치 않다. 정형식 김상수 배영섭 조동찬 등이 가득찬 라인업은 결코 상대 배터리가 방심할 대상이 아니다. 노쇠화를 겪었다고 해도 박한이(4.7) 역시 리그 평균, 이승엽(4.3)도 홈스틸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KIA는 김주찬 영입으로 순위가 올랐다. 만약 김주찬이 없었다면 평균 계산에 차일목이 들어갔을 것이다.

거꾸로 롯데는 김주찬을 잃었지만 홍성흔(2.4) 대신 박준서(5.7)가 들어갔다는 점에 위안을 삼으면 될 터. SK는 지난해 도루 최하위(104개)에 그친 데 비하면 전체적인 기동력은 유지한 편이었다. LG는 양극화다. 이대형이 있지만 최동수도 있다. 게다가 큰 이병규(2.6), 작은 이병규(2.7) 모두 느리다. 한화는 이여상(5.1)이 최고 기록. 두산도 정수빈을 제외하면 나이 들어가는 이종욱(5.3) 정도가 명함을 내밀 정도다.

NC는?

NC는 1군 경험이 없으니 아직은 미지수. 그래도 2군 성적을 토대로 보자면 차화준(전 넥센·66경기·도루 27개)과 김종호(전 삼성·67경기·26개)는 '발야구'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 나성범(94경기·29개)도 뛸 준비를 마쳤다. 물론 2군하고 1군은 다른 세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창민(전 SK·6.4)도 NC에서는 기회를 잡을 확률이 더 높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야구에서 공격은 발보다는 방망이로 한다. 31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스피드스코어 1위 팀이 득점 1위를 차지한 건 6번(19.4%)밖에 안 된다. 뛰는 야구는 어디까지나 보조제일 뿐이라는 얘기. 그래도 응원석에서 '뛰어!'를 외치는 쾌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과연 새 시즌에는 어떤 팀 팬이 가장 희망을 갖고 저 구호를 자주 외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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