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는 교진(巨人)과 안티 교진으로 나뉜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 모르지만 일본 프로야구(NPB)를 논할 때 거의 정석처럼 쓰는 말입니다. 교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애칭. 요미우리는 올 시즌에도 2위 주니치 드래곤즈에 10게임차 이상 앞서며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요미우리는 최고 명문 팀답게 스타도 참 많이 매출했습니다. 통산 868홈런으로 전 세계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왕정치(王貞治·일본명 오 사다하루·사진)도 요미우리 출신입니다. 왕정치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을 정도로 명장이기도 합니다.

왕정치는 1959년 데뷔해 1980년 은퇴할 때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만 22시즌을 뛰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요미우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1980년부터 타격 코치(정확히는 1976년부터 플레잉 코치), 2군 감독을 지내고 1984년 1군 감독이 됐습니다. 1987년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경질되던 1988년에도 팀 순위는 2위였습니다.

그런데 1995년 다이에 호크스 감독을 맡기 전까지는 왕정치는 해설과 평론만 했습니다. 감독으로 '모셔가려던' 팀이 없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줄곧 해설과 평론만 고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순간 영영 요미우리 감독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왕정치가 구단과 무슨 원한 관계로 헤어져서 그런 건 아닙니다. 야구계에 머무는 동안 단 1초라도 다른 팀 유니폼을 입었다면 요미우리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 때문이죠.

요미우리는 지독할 만큼 감독 순혈주의를 고집합니다. 그러니까 요미우리에서 데뷔하고 은퇴해야 하고, 코치나 감독으로도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서는 절대 요미우리 감독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세이부 라이온즈 감독으로 일본 시리즈 3연 패를 두 번이나 차지하고, 리그 우승을 8번 차지한 모리 마사아키(森祇晶)는 요미우리 감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요미우리에서만 20년 뛰었고 1967년 일본 시리즈 MVP였다는 건 그냥 과거일 뿐입니다. 모리가 1978년 야쿠르트 스왈로즈 코치를 맡은 순간 요미우리 감독 후보군에서 그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는 겁니다.

반면 호리우치 쓰네오(堀内恒夫)는 5년 동안 TV 해설을 하다가 2004년 요미우리 감독이 됐습니다. 감독으로서 준비가 사실 전혀 안 된 상태였죠. 그러나 선수는 물론 코치로서도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2005 시즌 80패(승률 .437). 1975년(.382)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나쁜 성적이었죠.

이런 감독 순혈주의 때문에 다른 팀에 가면 최소 1, 2년은 더 뛸 수 있지만 그냥 은퇴를 선택한 요미우리 선수도 적지 않았습니다. 은퇴 후에도 다른 팀 감독, 코치 제의를 거절하고 TV 해설만 하는 일도 흔합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거의 늘 후계자 수업이 진행중입니다. 하라 다쓰노리(原辰徳) 현 감독 자리는 아직 현역인 다카하시 요시노부(高橋由伸)가 이어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차기 요미우리 감독을 꿈꿨던 나카하타 기요시(中畑清)는 기나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올 시즌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순혈주의를 지독하게 고집하는 게 옳은 것이냐에 대한 비판은 안팎에서 계속 들리고 있습니다. 구단 안에서도 전향적인 시도가 없던 건 아닙니다. 2004년 감독 선임 때도 주니치 출신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현 라쿠텐 이글스 감독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미우리 OB회에서 발끈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요미우리가 이렇게 지독한 순혈주의를 고집할 수 있을까요. 하라 감독이 불륜 스캔들에 휘말리고 다카하시가 인격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리는 걸 보면 그리 머지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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